안동식혜 / 안도현
경북 북부지방 여자들은 음력 정월이면 가가호호 식혜
를 만드는데, 찹쌀을 고들고들하게 쪄서 엿기름물에 담
고 생강즙과 고춧가루 물로 맛을 내 삭힌 이 맵고 달고
붉은 음식을 특별히 안동식혜라고 부른다
안동식혜를 담아온 사발에는 잘 삭은 밥알이 동동 뜨
고 나박나박 썬 무와 배도 뜨고 잣이나 땅콩 몇알도 고명
처럼 살짝 뜨는데, 생전 이 음식을 처음 받아본 타지 사
람들은 고춧가루에서 우러난 불그죽죽한, 그 뭐라 필설
로 형용할 수 없이 야릇한 식혜의 빛깔 앞에서 그만 어이
없어 '아니, 이 집 여인의 속곳 헹군 강물을 동이로 퍼내
손님을 대접하겠다는 건가?' 생각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
한다
그뿐이랴, 금방이라도 서걱서걱 소리가 날 것 같은, 입
안으로 들어가면 잇몸을 순식간에 화끈 찌르고 말 것 같
은 살얼음이 사발 위에 둥둥 떠 있으니 도저히 선뜻 입을
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안동에 사는 굴뚝새들은 잠 아니 오는 겨울
밤에 봉창을 부리로 두드리며 "아지매요, 올결에도 식혜
했니껴?" 하고 묻고, 이런 밤 마당에는 목마른 항아리가
검은 머릿결이 아름다운 눈발을 벌컥벌컥 들이키기도 하
는 것이다
-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비시선.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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