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는 ‘민족의 역사’다. 나라가 힘이 없고 먹고살기 힘들던 지난날, 우리 선조들은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넜다. 1860년대 연해주·간도 개척자를 비롯, 구한말 하와이·멕시코 이민자들이 좋은 예다. 국권이 침탈당하자 민족 자존과 독립을 위해 수많은 우국지사들이 해외 망명·유랑길을 떠났다.
해방 이후 전쟁 고아·혼혈 아동들이 해외 입양아로 이 땅을 떠난 것이나 남미 이민, 광원·간호사 파독 (派獨), 월남 파병, 근로자 중동 진출, 태권도 사범 해외파견 등 일련의 해외진출도 지독한 가난과 일자리 부족 때문이었다.
재외동포는 ‘민족의 자산’이다. 이들은 한시도 조국을 잊지 않았다. 집 떠난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고 시집간 딸이 고향을 그리워하듯 모국 소식에 목말라했다. 한국전쟁이 나자 누구보다 먼저 달려왔으며, 태풍이라도 불면 대신 맞고 싶어했다. 고향마을에 길을 냈고 나무를 심었고 회관을 지었다.
선진 과학기술과 첨단 두뇌 제공은 물론 우리 상품과 문화를 해외에 전파했다. 서울 올림픽·대전 엑스포·한일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물심양면 도왔다. 외환위기 때는 달러 송금으로 뜨거운 동포애를 발휘했다.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 독도 영유권 홍보, 자원·에너지 확보, 지구환경 보호 등 정부가 해야 할 일도 대신하길 마다하지 않았다.
재외동포는 ‘민족의 미래’다. 5대양 6대주 170여 개국에 한민족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새로운 60년의 국가비전을 밝히면서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하나로 연결하고, 땅은 좁지만 마음은 넓은 나라를 실현하자”고 강조한 것도 700만 재외동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남의 땅에 살면서도 특유의 성실과 근면, 남다른 생명력과 개척정신으로 한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글로벌 코리아’를 실현할 최적임자들이다.
따라서 재외동포의 역사성과 이들의 공훈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부정하는 일이다. 이들이 가진 글로벌 휴먼 네트워크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포기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재외동포는 더 이상 남이 아니다.
그러나 재외동포를 대하는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땅을 떠난 사람들’이라는 시각에 큰 변화가 없다. 이들의 현지 정착과 권익 보호를 지원하는 국가 예산규모나 조직 체계는 너무나 열악하다. 모국 이해와 모국어 구사에 어려움을 겪는 차세대 동포도 늘어나고 있다. 모국과의 유대감도 예전 같지 않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입장 차이로 동포 상호 간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으며, 이들의 역량을 통합 관리하고 글로벌 인재를 활용할 국가적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물론 지금 와서 남 탓을 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제라도 새 판을 짜야 한다. 정부는 강력한 정책의지로 재외동포의 무한한 가능성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대륙·국가·지역·전문 분야별 네트워크를 집중 육성해야 하고, 차세대 교육·장학 사업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소외되거나 낙후된 동포 사회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재외동포 사회 역시 현지 정착과 자녀 교육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한인 동포 사회의 성숙과 거주국 발전에 적극 기여하면서 모국과 거주국 모두 상생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혀 나가야 한다. 특히 재외동포재단은 700만 재외동포를 인적 자원화하고 통합 네트워킹하는 전문 서비스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5일은 ‘세계 한인의 날’이다. 재외동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하기 위해 정부가 제정한 기념일이자 재외동포와 내국민이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는 날이다. 이 날을 계기로 모국과 재외동포 사회가 하나 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700만 재외동포가 민족 자산화 될 때 한민족의 지평은 넓어질 것이며, 세계 한인 네트워크의 위력은 다시 한 번 발휘될 것이다.
권영건 재외동포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