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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동네 서점을 ‘사랑방’으로 만들자
작성자 김정수 | 2003-04-16 | 154
단행본 출판영업을 한 지도 어느덧 10여 년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게 변함없이 들리는 얘기가 있다. ‘출판계 불황 중’. 언제나, 누구나 출판 및 인쇄, 서점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모두 한결같다. 참으로 심지(?)가 깊은 것 같다. 평생을 불황의 늪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출판업계는 불황이었는가? 설립된 지 몇 년 안 된 인터넷 서점 yes24의 규모는 벌써 교보문고에 육박하고 있다. 전국에 100여 개나 널려 있는 대형 할인 마트 도서매장 바닥에도 어린이들이 빼곡히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우리가 불황의 늪이라고 여기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동안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반면 동네서점은 1997년 5,170개에서 2001년 2,646개로 줄었다. 5년 만에 무려 절반 가까운 서점들이 문을 닫은 것이다. ‘인터넷 서점’이나 ‘대형 할인 마트’의 눈에도 우리 출판시장이 만년 불황이고 사양사업으로 보였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출판시장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테고, 그토록 빠르게 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급성장의 배경에는 ‘할인’이라는 강력한 수단이 깔려 있다. 하지만 할인판매 하나로만 이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출판영업을 하면서 나는 전국 1,800여 개의 동네 서점을 방문했다. 서점을 방문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대부분의 서점들이 기껏해야 한두 평의 공간만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10평에서 20평까지의 공간을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공간은 10분의 1도 채 안 된다는 것이다. 계산대를 중심으로 진열된 이른바 종합 베스트셀러 몇 종과 잡지 몇 종, 거기서 대부분의 매출이 이루어진다. 나머지 공간은 장식용 서가에 다름 아니다. 벽쪽을 둘러싼 서가를 보면, 손이 닫지 않는 높은 곳과 허리를 숙여야 책이 보이는 낮은 곳에 책들이 꽂혀 있다. 헌 책방에나 어울릴 만한 고서들이 즐비하다. 출간한 지 너무 오래돼서 표지색깔이 바랜 책들도 부지기수다. 그뿐이 아니다. 저녁 무렵 어느 서점에 들렀더니, 근처의 다른 자영업자들과 다른 오락을 하는 경영자도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어떤 소비자가 서점에 자주 들르고, 책을 고르기 위해 머물겠는가? 이렇게 서점을 경영하면서도 출판업계가 불황이라느니, 요즘 사람들은 책을 안 본다느니, 하는 등의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내가 경험한 몇몇 서점들은 아마 대부분 최근 몇 년 사이 문을 닫았다. 문제는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동네 서점들이다. 매출구조를 다양화한다고 서점 입구에 인형 뽑는 기구를 설치하거나 복권을 판매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동네 서점들은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 최근 MBC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기적의 도서관 세우기’ 프로젝트를 방송하고 있다.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어린이 전용도서관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등 국내의 열악한 도서관 환경에 대해 국민들의 충격과 각성을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도서관 세우기는 많은 시간과 자금이 소요되는 일이다. 나는 우리동네 서점들이 곧바로 도서관이자 청소년들의 사랑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네서점들이 지금의 비효율적인 공간배치나 인테리어를 고집하지 말고 사고를 새롭게 하여 공간활용을 하면 매우 쉽게 도서관으로 변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렇게 되면 동네서점들의 불황도 타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재 물류 시스템은 책을 주문하면 다음날 또는 다다음날 도착하게 돼 있다. 굳이 옛날처럼 재고를 많이 갖고 있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손이 닫지 않는 높은 곳과 바닥청소라도 하려면 물이 튀는 곳까지 책을 진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도서 재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나머지 공간은 우리동네 어린이 주부 등 소비자들에게 ‘독서방’으로 제공하면 된다. 재고의 효율화를 통해 어느 정도의 공간만 확보한다면 그리 큰 자금도 필요하지 않다. 테이블 한 개, 의자 몇 개, 거기에 생수기 한 대에 일회용 종이컵, 커피, 코코아, 사탕 한바구니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동네 어린이나 주부 등 이웃 주민들이 언제라도 와서 차를 마시면서 책을 고르고 볼 수 있는 공간, 갈 데가 없어 PC방이나 노래방을 전전하는 청소년들의 사랑방으로 만들어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우리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소비 스타일이다. 소비자들은 고객이 한 명도 없는 점포에는 들어가기를 꺼린다.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선 독자를 불러들이는 것이 서점 활성화의 관건이다. 우리동네에 ‘독서방’이 생겼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서 언제나 독자들로 가득한 서점 풍경! 생각만 해도 절로 신이 난다. 출판사들도 보다 더 좋은 책을 만들고 공급하고 싶어할 것이다. 물론 하루종일 책만 읽고 사지 않은 채 그냥 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 두번…열 번을 와서 차를 마시고 공짜 독서를 즐기고서 책을 한 권도 사지 않을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사지 않으면 또 어떤가? 책을 읽을수록 독서인구의 저변이 확대되고 책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말이다. 이처럼 동네서점에 활기가 넘치면 서점도 증가할 테고, 독자가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 출판시장의 질과 양적 성장은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닐까? 끝으로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 관련 당국이나 MBC ‘느낌표’에서 도서관을 신축하는 것도 중요하고 꼭 해야겠지만, 추가적인 사업으로 우리동네 서점을 ‘독서방’, ‘사랑방’으로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서점 경영자들한테 최소한의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 주었으면 한다. 세계 최고의 독서율과 세계 최대 도서관 보유율. 우리동네 서점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주)로크미디어 이사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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