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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옆 풍요
“미치, (지금 이런 내 처지에) 알지도 못하는 (지구 저편의) 사람들이 마음에 걸리느냐고 물었지. 하지만 내가 이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을 말해줄까?”
“뭐죠?”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소근거리는 듯 낮아졌다.
“사랑을 받아 들이라구. 우리 모두는 ‘난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하지. 또 사랑을 받아들이면 너무 약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레빈이란 현면한 사람이 제대로 지적했네. ‘사랑이야 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다’라고 말야.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중에서 -
한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정신차리고 보니, 역시 눈에 들어온 첫 번째 책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몸의 각 기관이 하나씩 굳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두 눈의 눈물조차 스스로 가누기 어려웠던 노 교수의 이야기. 실화를 담고 있는 이 이야기는, 굳이 실화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병마와 함께 시작된 그 분의 특별한 강의에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게 합니다.
성공… 만약 그것이 계속 앞으로만 전진하라고 채근대는 채찍질 같은 것이라면, 끊임없이 ‘부족함’만을 내세우며 우리를 달구는 용광로 같은 것이라면, 과연 우리는 진정한 사랑과 풍요를 느낄 수 있을까? 모리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사랑을 받아들이면 약한 사람이 된다’는 잘못된 코드를 마음속에 입력시켜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한번 찐하게 아프고 일어나니, 이젠 그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몸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 하나하나에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이젠 스스로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천당과 지옥이 다 자신의 마음에서 그려놓은 환영이란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힘찬 호흡을 가다듬어 봅니다
나는 선생님에게 자기 연민을 느끼는지 물었다.
“이따금, 아침이면 그렇다네. 바로 그 시간에 슬픈 생각이 드네. 그러면 아직도 움직일 수 있는 내 몸의 부분들을 만져보고, 손가락과 손을 움직여 보고, 잃은 것들에 대해 슬퍼하지. 천천히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슬퍼한다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슬퍼하는 것을 멈추네.”
“어떻게요?”
“필요하면 한바탕 시원하게 울지. 하지만 그 다음에는 내 인생에서 여전히 좋은 것들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네. 나를 만나러 와줄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내가 들을 이야기에 대해. 그리고 만약 그 날이 화요일 이라면, 미치 자네에 대해. 왜냐면 우린 화요일 사람들이니까.”
나는 씩 웃었다. ‘화요일의 사람들.’
“미치, 난 그 이상 자기 연민에 빠지진 않는다네. 아침마다 조금씩 그런 기분을 느끼고 눈물도 흘리지만 그걸로 끝이야.”
깨어있는 시간 내내 자기 연민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가 아는 사람 대부분이 그랬다. 하루에 자기 연민을 느끼는 시간을 정해두면 얼마나 유용할까. 몇 분만 눈물을 흘리고 그 날의 나머지는 즐겁게 산다면. 무서운 병을 앓는 선생님도 그렇게 하고 계신데…
“내 몸이 천천히 시들어가다가 흙으로 변하는 것을 보는 것은 끔찍하기 짝이 없지. 하지만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갖게 되니 한편으로는 멋진 일이기도 해.”
그분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누구나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거든.”
나는 의자에 앉은 선생님을 천천히 살펴 보았다. 설 수도 없고, 씻을 수도 없고, 바지를 올릴 수도 없는데. 그런데도 운이 좋다고? 정말로 운이 좋다고 말하는 건가?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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