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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중학교 때 쯤에 처음으로 들어보고 명언으로 기억하고 있는 말이 하나 있을 법한데 그것은 바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Boys, be ambitious!)”는 것이다. 이 말은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지만 사실은 그 출처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이 말이 원래 일본에서 나왔다고 하면 의외라고 여길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이 아닌 일본에서 어떤 연유로 이 말이 나왔을까? 이 말 속에는 한 선각자의 멈출 수 없는 발걸음의 흔적과 땀이 녹아 있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1800년대 후반, 일본의 메이지(明治) 정부는 북방의 방비와 국력의 증진을 위하여 홋카이도(北海道)를 개발키로 결정하였다. 홋카이도 즉 북해도는 일본의 북단에 있는 큰 섬인데 1972년에 제11회 동계올림픽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인구 150만의 최대도시로서 “삿포로 맥주”로도 유명한 삿포로라고 하는 도시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북해도는 그때까지만 해도 미개척지로서 황무지에 불과하였다. 겨울에는 많은 눈이 내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원주민들과 싸우면서 북해도 개발을 열심히 주도하던 구로다(黑田淸隆)는 미국의 대륙 개발을 모델로 삼기 위하여 미국을 시찰하고는 미국의 그랜트 대통령에게 협력을 구하였다. 그 과정에서 1차로 케프론이라는 사람이 파견되지만 별로 도움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2차로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농과대학장이던 윌리엄 S. 클라크박사를 초빙하였다. 이때 클라크박사는 구로다와 미국인 조수 2명, 학생 11명과 함께 1876년 9월, 황무지 삿포로에 농림학교를 세우고 초대 교장이 되었다.
클라크는 부임 초기에 일본인 관리가 교칙(校則)을 만들겠다고 하자, 웃으면서 규칙으로 인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면서 “신사가 되라(Be gentleman)”는 말이면 충분하다고 규칙을 없앴다. 그러나 원기 왕성한 학생들은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리며 수업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자 구로다는 학생들에게 술을 금지시키라고 하였다. 사실 클라크는 스스로도 술을 좋아하였기에 1년분의 술을 미국에서 가져왔지만 그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이기 위하여 자기가 갖고 온 술을 전부 교실에 옮기고 스스로 금주를 서약하였다.
1877년에 클라크박사는 1년의 체재 기한이 끝나고 이별의 시간을 맞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는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세계적인 학자이면서 독실한 기독교신자이기 했는데 황무지의 북해도에서, 그리고 개화되지 않은 일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편으로는 학문과 농사기술을 가르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공부를 통하여 신앙심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물질과 정신의 양면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을 일깨우고 교육하였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많은 젊은이들이 훌륭한 농업기술자가 되거나 정신계의 지도자가 되어 개화기의 일본을 이끌어나갔고 오늘날 선진 일본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 가운데는 특히 우찌무라 간조라고 하는 기독교계의 거물도 나왔다.
우찌무라는 삿뽀로농림학교 시절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그것을 계기로 1882년 삿뽀로독립교회를 세웠다. 이 시절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와다세오시마 사또 등을 중심으로 서구 기독교로부터 독립된 교회활동으로 그는 일본적 기독교를 추구한 사상의 기틀을 보여주었다
하여간 당시의 일본은 1868년에 일어난 명치유신 이후, 사회가 극도로 혼란에 빠져 있었으며 국가의 기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시기는 일본 역사상 혼란기라고 할 수 있는 일종의 과도기였다. 그리고 이 시기는 또한 서구의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가치관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던 때이기도 하였다. 그러한 때에 클라크 박사의 지도를 받았거나 그의 리더십으로 시작된 삿포로 농림학교 출신들은 졸업 후 사회 각계각층으로 배출되어 일본을 바로 이끌어 가는 정신적인 지도자들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클라크박사는 보다 멀리보고 야망을 갖고 포부를 갖고 이상을 가질 것을 역설하였고 그 자신 몸소 그것을 실천하였다. 그는 갖가지 불리한 역경을 멈출 수 없는 발걸음으로 이기면서 자신의 꿈을 성취하여 나갔다. 비록 짧은 세월을 일본에서 보냈지만 그의 멈출 수 없는 발걸음이 있었기에 일본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젊은이들의 가슴에 그의 흔적은 크게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처럼 “홋카이도 개척”의 아버지로서 현재 삿포로에 그의 동상이 있으며 북해도 농림학교의 후신인 일본의 명문 국립 대학교인 북해도대학교의 캠퍼스에도 흉상이 자리잡고 있다. 몇 년 전에 나는 북해도대학교를 방문하는 자리에서 캠퍼스 한 가운데 숲 속에 서있는 그의 흉상과 그 밑에 새겨진 “Boys, be ambitious!”라는 문구를 보고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때 배웠던 그 명언의 발상지가 바로 여기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감격스러웠다.
그렇다! 그의 명언처럼 우리가 인생에서 꿈과 이상을 갖는 것은 소중한 일이며 더구나 멈출 수 없는 발걸음으로 자기의 길을 가는 일 또한 귀중한 일이기도 하다.
동문여러분! 오늘도 신나고, 즐겁고, 보람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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