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소리없이 다가오던 어느 날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우리 사무소에 찾아왔다. 추운 겨울이 다 가지 않아서인지 할머니는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고 옷차림은 단정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겨우 내내 빨지 않은 듯한 파카를 입고 다리가 불편한지 철로된 보조 지팡이에 의지하고서야 겨우 거동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로는 몇 군데 법률쇼핑을 한 것처럼 보였고 아마도 그 곳에서는 사무장에 의하여 변호사 얼굴도 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으로부터 상담보고를 받고 나는 직접 상담하기로 하고 변호사실로 안내하게 하였다.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그 할머니의 이야기는 자신이 임차하고 있는 작은 여관이 기간이 만료되어 가는데 그 건물주가 이를 제3자에게 매각하였고 새 소유자는 여관을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지을 계획이라면서 비워줄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무엇이 억울하냐고 할머니께 여쭈었는데 할머니는 1년 전에 자신이 나가겠다고 주인에게 말했으나 주인은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겠다고 하여 할 수 없이 수리비를 들여 보일러 등을 수리하여 계속 영업을 하게 되었으므로 그 수리비를 지급하든지 아니면 만기인 6월 이후 그 해 10월까지라도 더 영업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요청은 새 소유주에게는 보기 좋게 거절되었고 만기일에 명도하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내용증명이 수차례 온 상태였다. 그래서 할머니의 요구사항은 몇 달간이라도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회신을 내용증명으로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솔직히 내용증명을 작성하기 싫었다. 무엇보다도 관련 서류를 검토해 본 결과 달리 새로운 소유자의 주장을 반박할 근거가 없었고 바쁜 시간을 내어서 서면을 작성하면서도 별로 돈도 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께 10만원 정도를 요구하면 할머니가 비싸다고 다른 곳으로 갈 것이라고 판단하고 친절하게 할머니의 요구를 서면으로 작성하는데 비용이 10만원 정도 한다고 말했다.
나의 예상대로 할머니는 10만원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다른 곳에서는 5만원에 해 준다는데 5만원으로 해 줄 수 없느냐며 간청하였다. 그러나 나는 잘 되었다 싶어 그럼 다른 곳에서 가셔서 5만원에 작성하면 된다고 말하고 막 일어서려고 하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다음에 10만원을 준비해 가지고 오겠다고 하면서 그 때는 서면을 작성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또 다른 법률쇼핑을 하리라고 쉽게 생각하고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몇일 뒤 할머니 혼자서 다시 방문하였다. 그러면서 10만원을 준비해 왔다며 내용증명을 써 달라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거절하지 못하고 3일 이내로 써 주겠다며 돈을 받았다. 그러나 서면을 쓰려 해도 할머니가 영업이 끝나는 몇 달뒤부터 그 해 말까지 영업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계속 고민만 하고서 손을 대지 못하다가 약속한 그 날이 다가왔다. 그 날 아침 나는 5시 30분 쯤 일어나서 서적을 뒤척이며 고민하다가 서류를 작성하였다.
필요비, 유익비 이론, 그 계약은 실제는 전세권 등기가 되어 있더라도 임대차계약이고 이것은 1년 전에 계약이 걩신되어 아직 기간이 만료되지 않았으며 그러한 의무를 양수인이 승계하였다는 등 5개 정도의 억지에 가까운 항변사항을 잔뜩 적으면서 12월까지 영업을 하겠다는 취지로 적었다. 그 날 찾아온 할머니께 드리면서 내용증명을 발송하도록 하였다. 나는 12개월에서 일부 양도하면서 10월까지 하겠다는 계산이었다.
나는 그러면 각종 법률문제가 제기되어 있으면 상대방은 협상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생각대로 상대방은 이를 반박하느랴 상당히 고생한 듯한 내용증명을 다시 보내왔다. 할머니는 다시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질문하였고 나는 이에 대응하는 서면과 조언을 계속해 주었다. 어느덧 내용증명 하나로 그 사건을 짊어진 느낌이었다. 선배들의 조언이 생각났다. 모든 일은 댓가를 챙겨야 훌융한 변호사가 된다는 말이----
그 후 할머니의 전화가 왔다. 상대방이 10월까지만 영업하도록 하고 그 이후에는 무조건 명도하는 것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할머니도 나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것으로 나의 기억 속에 그 할머니는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갑자기 사무실을 방문했다. 나는 또 문제가 생겼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개업을 한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선물을 가져 왔다며 포장이 된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나는 뜯어보지도 않고 할머니께 이런 것은 괜찮다고 말하고 도로 가져가시라고 말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성의라며 받아달라고 하여 나는 할 수 없이 그냥 받아 두었다.
그리고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서 선물을 책상서랍에 넣어 두었다. 몇일 후 서랍을 열다가 그 선물을 발견하고 이를 뜯었다.
그 선물은 뜻밖의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금거북이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내용증명의 댓가를 지불했으면서도 금거북을 선물하였던 것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한 일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지불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가치는 단지 금거북보다도 내 가슴속에 남은 할머니 마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