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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잃어버린 시절을 찿아서(다방과 디제이...)
작성자 이시봉(9) | 2003-04-27 | 152
달동네 시장통의 분식집은 찐빵*이나 만두 같은 것을 파는 허름한 집이었다. 무쇠 가마솥을 밖에 내놓고 만두와 찐빵을 쪄댔다. 가마솥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나 아이들이 군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찐빵이나 만두가 먹고 싶으면 밥맛이 없다며 아침부터 굶었다. 한끼야 그렇다고 치지만 아이가 점심까지 굶으면 어머니들은 걱정이 돼 아이 손에 슬그머니 돈을 쥐어줬다. 아이들은 쥐새끼처럼 쪼로로록 분식집으로 달려갔다. 고등학생쯤 되면 알음알음으로 미팅*을 했다. 분식집은 고등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데이트 장소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지도선생님*들이 가끔 분식집 단속을 나와 여학생과 남학생의 학교.학년.반.번호.이름을 적어갔다. 지도선생님들은 또 복장불량* 학생들도 단속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곤 집과 학교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사대문 안의 분식집을 이용했다. 그깟 미팅을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그 땐 부모님들이 자식들의 편지를 공식적으로 검열했다. 연애편지라도 오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사내한테 꼬리치고 다닌다'며 딸을 혼구멍 내주던 때였다. 물론 연애편지는 부모에게 압수당했다. 그래서 연애편지는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는 게 아니고 동네꼬마들을 시켜 배달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편지를 전달할 아이가 마땅치 않을 땐 어쩔수 없이 우체통을 이용했다. 그러면 받는 쪽은 편지가 도착할만한 날, 하루종일 문 앞에 서서 우체부아저씨를 기다리고 서있었다. 성년이 돼야 다방엘 들어갈 수가 있었다. 성년의 기준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느냐 였다. 고등학생까지는 다방 근처에도 얼씬거릴 수 없었다. 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나도 이젠 성인이 됐다'며 볼 일도 없이 담배 하나 꼬나물고 다방에 한참 앉아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방에 다닐 수 있다고 해서 연애까지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때 결혼은 대부분이 중매결혼이어서 과년한 처녀가 다방에서 사내와 앉아 있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하는 날이면 동네에서 아예 ‘날나리' 취급을 당했다. 그래도 남녀 사이는 인력으로 안되는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거를 하는 쌍도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동거하는 여자는 사람 취급도 안했다. 다방엔 차를 나르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레지라고 불렀다. 동네 젊은이들은 말이라도 한 번 붙이고 손이라도 한 번 만져보려고 다방엘 자주 들락거렸다. 레지들은 손님이 혼자 앉아있으면 옆자리에 앉아 말동무가 돼주곤 했다. 손님은 말동무를 얻은 대신 레지에게 커피나 쌍화차* 같은 것을 한 잔 사줄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않아 커피 한 잔 마시곤 하루종일 붕어처럼 오차만 마셔대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런 손님일수록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해서 레지들과 노닥거리곤 했다. 그러니 다방 주인이 좋아할 리 없을 수밖에. 그래서 다방 주인들은 레지들이 어느 정도 단골이 생기면 다른 동네 다방과 서로 바꾸곤 했다. 다방엔 노래와 음악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다방은 전축을 카운터에 들여놓고 주인 맘에 드는 가요들을 틀어줬다. 그런 다방은 으레 케케한 냄새가 나는 곳이어서 ‘노땅다방'이라고 불렀다. 젊은이들은 주로 팝송을 틀어주는 다방으로 모였다. 그땐 그거나 저거나 다 ‘다방'이라고 써붙였었는데 나중에 젊은이들이 자주 가는 다방들은 ‘커피숍'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커피숍엔 디스크자키(디제이)가 있었다. 한 쪽 구석에 유리로 된 박스를 만들고 거기에 앉아서 손님들의 신청곡을 받아 틀어줬다. 머리도 길게 기르고 일부러 낮게 깐 음성으로 ‘닐 다이아몬드'가 어쩌고, ‘CCR'이 어쩌고 멘트를 한바탕 늘어놓고 음악을 틀어줬다. 그 게 멋있게 보였는지 디제이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매일 디제이 박스 앞에 몇시간씩 앉았다 가는 여자들도 꽤 있었다. 디제이의 시선을 끌려고 음악신청용 쪽지에 하트모양을 그려넣기도 하고 껌이나 사탕을 넣어주기도 했다. 라디오는 또 다른 사랑 표현 도구였다. 디제이가 시청자 사연을 읽어주고 신청곡을 틀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젊은이들은 그 곳에 사연을 보내 상대방에게 사랑을 전하기도 했다. 대부분 사연을 보내는 시청자들은 학생들이었다. 늦은 밤 프로그램이라 피곤에 지친 부모들은 이미 잠이 들었으니 부모들한테 걸릴 리도 없었다. 또 '밤 늦게까지 공부한다'고 부모님께 칭찬을 들을 수도 있었으니 학생들에겐 일석이조였던 셈이다. *이런말 저런말 *찐빵 막걸리를 넣은 반죽을 재워서 만들었다. 케케한 술냄새가 났는데 그런 탓인지 나중엔 막걸리 대신 ‘이스트'를 많이 썼다. 길거리에선 아줌마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집에서 쪄가지고 나온 술빵을 팔았다. 술빵엔 ‘앙꼬'가 없었는데 싸고 커서 달동네 사람들은 밥 대신 사먹기도 했다. 뒤에 삼립 호빵이 나와 구멍가게에서 통을 놓고 따뜻하게 해서 팔았다. *미팅 학생들의 미팅은 대충 알음알음으로 이뤄졌다. 여동생이 있으면 여동생 친구들과 하는 식이었다. 여학생들이 자기 소지품을 하나씩 꺼내 모아놓으면 그것을 남학생이 하나씩 골라 짝을 지었다. *지도선생님 지도선생님은 학교마다 있었지만 단속은 학교를 안 가리고 했다. 대개 방과 후 극장.분식점 등에서 지도단속을 했다. 자기 학교 학생이 아니면 해당 학교에 통보를 해줬다. 듣기로는 학교 사이에 지도단속 경쟁도 있었다고 한다. 자기 학교 학생이 다른 학교 지도선생님에게 걸리면 자기가 잡은 그 학교 학생과 ‘포로교환' 같은 것도 했다고 한다. *복장불량 모자 벗고 다니기, ‘호꾸' 풀고 다니기, 가방 옆구리에 끼고 다니기, 신발 꺾어 신고 다니기, 바지통 줄여입기, 긴 머리 등. *커피 오전에 차를 시키면 커피에 계란 노른자를 띄워서 줬다. 그 걸 모닝커피라고 불렀다. 쌍화차도 팔았는데 쌍화차에도 잣 몇알과 계란 노른자를 띄웠다. 커피숍이 생기고 나서 다방은 분화가 됐다. 커피만 파는 커피숍과 쌍화차 등속도 파는 다방, 전통차를 주로 파는 찻집이 그것이다. 그때 찻집은-불법인지 합법인지 모르지만-인삼주나 더덕주 같은 것도 잔술로 팔았다. *프로그램 당시 ‘0시의 다이얼'과 ‘밤을 잊은 그대에게'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 같다. 주로 팝송과 ‘트윈폴리오' 같은 포크송 가수들의 노래를 많이 신청하고 틀어줬다. ‘ 0시의 다이얼'은 트윈폴리오 멤버였던 가수 윤형주가 디스크자키를 하다 뒤에 ‘그 건 너' 등을 부른 가수 이장희로 바뀌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황인용 아나운서 목소리가 생각난다. 출처: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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