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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가 싼 김밥..........
작성자 이성우(3) | 2003-10-07 | 215
아버지가 싼 김밥.................. 아들 수영이 녀석이 가을 운동회를 한다고 신이 나서 부산을 떨고 있습니다. 하얀 운동화를 챙기고. 체육복을 준비한다며 집안을 삽살개처럼 뛰어다니고 있는 아들 녀석을 지켜보는데 아련하게 시골 집 굴뚝에서 푸석푸석 일어나는 저녁 짓는 연기처럼 제 눈시울을 적시는 이야기가 눈에 고여 그렁그렁합니다. 지난 일을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아립니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가을 하늘이 깊어지면서 동네 친구들은 운동회가 가까워진다며 좋아서 날뛰고 있지만 아빠는 운동회란 것이 싫기만 했습니다. 서산마루에 걸린 저녁 하늘이 울고 난 눈동자처럼 붉어지는 나날이 지나고, 드디어 그 싫던 운동회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여느 날처럼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아버지께 고개를 조아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대문을 나서며 하늘을 처다 봤습니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 몇 송이가 피어 코스모스가 바람에 휘어졌다 일어서듯 기우뚱거리며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어이, 비나 와서 운동회 취소나 되라."라고 간절히 하느님께 빌었습니다. 하지만 몇 송이 피었던 구름도 오히려 가물거리며 사라지고 더욱 푸른 날이 었습니다. 운동회가 시작되고 떨떠름한 기분은 쉽게 가시질 않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청백으로 나누어진 자기의 편이 이기라고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했지만 저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영이가 달릴 차례가 왔습니다. "탕-" 총소리에 일제히 출발선을 벗어나 운동장에 그어진 흰 선을 따라 힘차게 달리지만 저는 물에 풀어진 종이처럼 맨 뒤에서 아이들을 따라갈 뿐이었습니다. 일등으로 들어온 아이가 골인 선에 지키고 있던 엄마 품에 안기고, 이 등한 아이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짓고 서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뿔뿔이 흩어지지만 수영이는 어머니가 안 계셨기 때문에 운동장을 어슬렁어슬렁 배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운동회나 소풍날이 정말 싫었습니다. 수영이는 그냥 돌아다니다 점심시간을 때우려고 했습니다. 시골 학교라 운동장이 작았습니다. 누군가 수영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학교 정문 쪽에서 들려왔습니다. 솔깃하여 두리번거리며 뒤꿈치를 들고 소리가 나는 곳을 보았더니 아버지가 서 계셨습니다. 꼭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수영이에게 손짓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수영이 때문에 회사도 결근하시고 수영이가 아침에 인사를 하고 집을 나온 뒤, 수영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손수 해 오셨습니다. 그때 수영이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하지만, 수영이는 정말 그런 모습이 싫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의 자리가 컸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아이들은 자기엄마와 서로 웃으며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무척 즐거운지 웃는 소리가 낭자하게 푸른 하늘로 솟아올랐습니다. 수영이는 아버지와 둘이서 앉아 점심을 먹었습니다. 수영이는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계속 돌아다녔습니다. 어느새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날 수영이는 하루 종일 어깨가 축 쳐져 있었습니다. 수영이는 아무 말 없이 방에 들어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수영이를 보고 빙긋이 웃었습니다. 수영이는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화를 내야 되는데 아무 말씀도 없이 수영이를 보고 살짝 웃고는 피우시던 담배만 빨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회사를 결근하면서까지 아들, 오직 아들을 위해 음식을 손수 장만하고 정성스럽게 싸왔는데, 아들이란 녀석은 아비의 맘도 알아주지 못하고 자기의 고집만 부리며 또한 아버지가 창피하다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버지가 계신 안방 문을 열어보니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수영이는 울컥 눈물이 났습니다. '운동회 날이나 소풍날이면 다른 아이들은 전부 엄마가 오는데…. '라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이불을 꺼내 웅크리고 주무시는 아버지를 덮어주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얼핏보니 눈 주위에 눈물 자욱이 있었습니다. 주무시지 않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고 수영이는 자기 방으로 와서 "아버지, 아버지! 미안해!"라고 속으로 소리쳤습니다. 지금 아버지는 저의 미안하다는 마음에서 하는 소리를 하늘에서 듣고 계십니다. "아빠, 사랑해." 아들이 내일 운동회라고 사준 장난감을 들고 내 무릎에 앉으며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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